다윗의 사랑하는 아들 앞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여 자리를 찬탈하려 했습니다.
국가가 위태해 지자
다윗이 (1)요압, (2)아비새, 그리고 (3)잇대 장수를
중심으로 3개의 부대로 편성해서 진압에 나서게 했습니다.
다윗은 진압에 나서는 3 장수들과 여러 군인들을 향해
비록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이지만
그를 너그럽게 대하도록 소통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되접하라.(삼하18:5)
지도자는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다윗이 보낸 군사들에 의해
압살롬이 쫓기게 되었습니다.
숲이 많은 상수리나무 옆으로 지나가다가
압살롬의 목이 걸리게 되어
목숨이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요압 장수의 한 부하는 보고를 했습니다.
요압 장군은 그 부하를 향해 압살롬을 죽이면
상급이 은 열 개나 되고, 상급의 띠도
받을 것인데 왜 죽이지 않으냐? 하면서
상수리나무에 걸린 압살롬을 그만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때에 요압을 향해 그의 부하는
다윗이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삼하18:12)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부하에게는 어떤 상급보다 중요한 것은
왕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라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코칭하는 코치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코칭의 목적은 상급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상급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까?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상급의 축복도 있지 않겠습니까?